14명의 생명을 앗아간 인천대교 고속버스 추락사고가 발생한 지 3주가 지났다. 관계자 증언에 따라 사고 과정의 분석이 끝난 듯 했지만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화물차에 충격을 받은 마티스가 이동 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교통공학과에서는 인천대교 교통사고를 재현할 시뮬레이션을 한창 만들고 있었다. 조건우 연구사는 “화물차가 마티스를 추돌하며 마티스가 옆으로 움직였고 이를 피하려다 고속버스가 추락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며 “세세한 도로 구조를 컴퓨터에 구현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은 끝났고 차량의 이동을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설계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 때는 도로의 구조는 물론 급제동시 생기는 ‘스키드마크’ 같은 노면 흔적도 전부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사고 버스가 운행한 속도가 전부 기록된 ‘타코미터’가 있어 버스의 움직임에 대한 자료도 포함됐다.
예전에는 이런 자료를 얻기 위해 현장에서 줄자나 굴림자로 도로를 계측했다. 최근에는 ‘3차원(3D)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컴퓨터가 바로 도로를 그릴 수 있도록 좌표로 읽는다. 이 스캐너는 도로에 난 스키드마크를 별도로 인식해 궤적의 시작과 끝도 좌표로 만든다.
조 연구사는 “도로의 경사나 굴곡이 컴퓨터에 정확히 입력돼야 물리 법칙에 따라 차량의 움직임이 계산 된다”고 설명했다.
사건의 모든 요소가 힘과 방향이 포함된 ‘속도벡터’나 좌표로 만들어져도 바로 시뮬레이션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입력된 자료가 너무 많으면 슈퍼컴퓨터로 계산해도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을 설계할 때는 사고와 관련이 없는 자료를 최대한 줄이면서 오차 발생은 막는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물리법칙에 따라 사고 차량의 움직임을 재현하게 된다. 이는 대개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3D 동영상으로 만들어진다. “시뮬레이션을 마치는 데 지난해 말 발생한 경주 교통사고는 한 달 반, 3월 삼척 교통사고는 두 달이 걸렸습니다. 이번 사고도 앞으로 3주 이상은 작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시뮬레이션이 법정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교통사고 재판에 사건을 재현한 3D 동영상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사건을 설명하는 자료일 뿐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조 연구사는 “객관적으로 물리법칙에 따라 재현하지 않고 한쪽의 증언을 바탕으로 영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실제로 중력가속도 같은 물리법칙을 조작하면 의도적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과수 교통분석과에서 만든 시뮬레이션에는 각 세부 요소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한 감정서가 포함된다. 버스가 운전자의 조향에 따르지 않고 미끄러진 이유에 대한 물리적 해석이나 속도와 무게에 따라 제동거리가 결정된 수학적 이유를 조목조목 글로 적는다. 사건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영상은 길어야 15초를 넘지 않지만 감정서의 분량은 웬만한 책 두께와 맞먹는다.
국과수에 따르면 각 요소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감정서가 타당하다는 판단이 들 때 재판장에서 교통사고 시뮬레이션이 증거로 채택된다. 굳이 영상으로 만드는 이유는 감정서가 가리키는 각 부분을 종합해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연구사는 ”교통사고 시뮬레이션을 만들 때 절대 알려진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며 “잘못하면 전체 그림을 미리 그려놓고 필요한 요소를 끼워넣기 하듯 작업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시뮬레이션은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와 물리법칙을 자연현상에 맞게 재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