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잡혀왔어요. 전 인천공항에서 인터뷰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우주인 이소연 씨(사진)가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올라간 지 딱 1년이 되던 8일. 인천국제공항 비즈니스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우주인으로 선발되며 KAIST 바이오시스템 전공 연구원에서 단박 ‘공인’ 신분이 된 그의 1년은 어땠을까. 우주인 이소연이 아닌 ‘인간 이소연’을 들여다봤다.
“오늘이 1주년인가요? 실감이 잘 안나요. 1주년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느꼈다면 미국에서 오늘 들어오는 일은 없었겠죠. 비행기에서도 도착하자마자 인터뷰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어요.”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동아일보 자료사진

갑작스런 인터뷰였지만 이 씨는 당황한 기색이 별로 없었다. 이젠 기자들 만나는 일에 이력이 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주인으로 선발되기 전부터 인터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던 배짱 때문일까. 이 씨의 배짱은 한국에 오기 전인 이날 오전(미국 시간) 갑작스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방문했을 때도 나타났다.
“총장 비서에게 총장의 일정을 물어보니 6일 또는 7일 밤에 들어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7일 오후에 한국으로 떠나야 돼서 운이 좋으면 7일 오전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비서에게는 6일 밤 총장이 돌아오면 몰래 연락을 달라고 했죠. 7일 아침에 만나려는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6일 밤 총장이 돌아왔고, 비서와 안전요원에게만 얘기해서 일정을 잡았어요. 깜짝 방문이었죠. 아침에 제가 나타나자 정말로 ‘깜짝’ 놀라며 반가워 했습니다. 요즘 많은 일이 있어서인지 총장님이 피곤해 했는데 잠깐이지만 둘이서 정답게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배짱 가득한 이 씨도 자신의 최근 인터뷰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우주에 다녀온 뒤 ‘공인’이 되는 바람에 대답이 자꾸 형식적이 되기 때문이다.
“
우주인이 되기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화가 나고 실망할 것 같아요. 저보고 가증스럽다는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공인으로서의 저는 필요한 부분만 걸러서 말을 해야 해요. 대상이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하면 혼란만 줄 수 있어요. 지금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고 자유롭게 얘기하려고 노력해요. 중요한 것은 진심이죠. 표현의 방법만 바꾸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공인이 돼서 제일 불편한 점을 묻는 질문에 이 씨는 것이 “더 이상 노래방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놀 수 없다는 것”이라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의미 부여를 하려고 노력”한다. 우주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주인 이소연 씨와의 일문일답.
-우주인이 되서 잘 됐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우주인 후보 2명으로 나와 고산 씨가 뽑혔을 때 주변 지인들이 공돌이(공학도) 2명이 신문 1면 표지를 장식하는 일도 있다며 축하해줬다. 공학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얻었으니 우주인 후보 2명으로 선발되던 날이 가장 보람찬 날이었던 것 같다. 우연찮게 부딪히는 학부형들이 고마워할 때도 있다. 공부를 안하던 자녀들이 ‘우주에 가려면 이소연 씨처럼 과학고와 KAIST를 가야 된다’고 하면 열심히 공부한단다.
공부 자체가 꿈을 이뤄주지는 않더라도 누군가가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하는 이유를 나를 통해 깨닫는다는 것이 참 벅차다. 같은 말이라도 KAIST 박사보다 우주인을 예로 들어야 어린 친구들이 잘 이해하나보다.”
-KAIST에서 박사 학위도 받았는데 관련 연구를 계속할 생각은 없는지.
“
관련 연구는 아니지만 관련 업무는 계속 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할 때 학부생과 함께 생물 수업도 듣고 석사 1년차 일도 새로 배웠다. 석사 때 공부했던 것보다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주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우주과학 실험 임무를 하려면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했다. 다행히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깊이 보다 여러 분야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됐는데 이것이 강점이 됐다. 즉 대학원에서 한 공부가 우주실험으로 연계된 셈이다. 우주인으로서 하는 일도 기존의 일과 연계됐다고 본다.”
-얼굴 변화 측정 실험을 진행한 조용진 한남대 교수가 우주에 다녀온 뒤 더 예쁘게 바뀌었다고 하던데 본인의 느낌은 어떤지.
“얼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공학도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우주에 다녀온 영향이 1년간 남아있기는 힘들 것 같다. 키가 1주일 만에 3cm나 컸다가 돌아온 것을 보면 얼굴도 오래 유지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우주에 다녀온 뒤 일정을 따라다니며 체중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얼굴이 갸름해졌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
-지난해 12월 고산 씨가 결혼했는데 본인은 생각 없나.
“
이소연은 앞으로 몇 년간 결혼 못한다는 제약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핑계라도 대려면 말이다. 사실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는 제약이 있을 수는 있겠다.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사실 외국 우주인 친구들 중에는 대한민국 안에서 찾지 말고 나를 잘 모르는 외국에서 찾으라는 사람도 있다.”
-공인인 것이 불편한가.
“
내가 불편할 것은 예측할 수 있어서 감수했다. 문제는 동생이다. 동생이 언니를 우주인으로 둬서 불편해한다. 동생에게 ‘우주인의 동생’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서 실수를 하더라도 일이 커진다. 너무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이 더 신경 쓰인다.”
-우주인이 된지 1년이 지났는데 1년 뒤에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항우연과 계약은 1년 뒤에 끝난다. 하지만 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해고당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2년 동안 사표를 못 쓴다는 의미의 계약이다. 지금으로서는 1년 뒤의 일을 예측할 수 없다. 갑자기 인터뷰하는 오늘의 일처럼 공항에 내리는 2시간 뒤의 일도 예측을 못하는데 1년 뒤를 생각하기 어렵다. 몇 달 사이에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유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고려해볼 생각이다. ”
-국내 우주개발 프로그램의 한 분야를 맡아서 연구할 생각은 없는지.
“이미 한국을 대표해 우주를 다녀왔기 때문에 우주개발에 있어서 평생의 책임과 임무가 부여된 셈이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직접 우주실험을 개발하지는 않겠지만 우주실험에 대해 조언해주는 컨설턴트의 역할은 할 수 있다. 우주는 지상과 다르기 때문에 우주인이 위험해질 수 있는 실험은 내가 중간에서 조정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우주인에게 우주실험을 교육할 때도 우주를 경험한 사람이 쉽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개발뿐 아니라 우주인과 관련된 일은 계속 돕고 싶다. 우주인끼리는 친밀도가 매우 강하다. 이를 통해 국제 협력에도 이바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주를 다녀온 뒤 국제 협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
우주에 다녀온 것으로 끝내지 않고 외국 우주인과 계속 교류하고 국내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적극 도와 10~20년 뒤 국내외에서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을 할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다. ”
-국제우주대회(IAC) 홍보대사로 활약 하고 있는데 연구주제 발표 계획은 없나.
“지난해 우주에 다녀온 뒤 외신 기자들의 불평이 많았다. 국내 정보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10월 열리는 IAC에서는 우주에 다녀온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우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IAC에서는 우주실험대회에서 입상한 친구들의 상장에 참석했던 우주인 5명이 전부 사인을 해줬다. 우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에 힘을 받지 않겠나.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IAC에서도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
-차기 우주인이 나온다면 누가 될까.
“얼마 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인 후보를 선발했는데 미국 우주인 페기 윗슨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에게서 ‘누가 우주인에게 적합한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사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면 3~4년 정도 훈련을 거쳐 누구나 우주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 냉정한 판단력, 겸손함이다. 일단 의지가 있어야 힘든 훈련을 완수할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판단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있을 때에도 지상의 명령을 겸허히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신은 훈련을 통해 길러지기보다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인 심사에서는 이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사실 우주인 후보에 지원하는 사람이면 조종사나 박사나 자기 분야에서 거의 최고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미 우주에 다녀온 사람들은 보면 우주인보다 옆집 아저씨 같은 생각이 든다. 오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우주인은 슈퍼맨처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실제 우주인은 만화 ‘슬램덩크’의 안 감독 캐릭터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아마 차기 우주인도 탄탄한 신체보다는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인천=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